카피라이터 임윤정 "카피의 경쟁력은 영감보다 이해력"

┃카피라이팅은 목적에 맞는 답을 찾는 과정
┃AI를 대항할 경쟁력은 시장·사람에 대한 이해와 감성

이찬주 기자 승인 2023.03.27 08:17 | 최종 수정 2023.03.28 14:15 의견 0
임윤정 카피라이터 (사진=디지털마케팅뉴스 DB)

"또 다시 독보적 울트라로" 삼성전자 갤럭시S23울트라의 홈페이지 헤드카피다.

한 줄의 멋진 문장으로 제품을 어필하는 카피는 얼핏 '창의성의 압축'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피라이터 임윤정은 TV, 라디오, 잡지, 신문 등 4대 광고매체에서 접하는 짧은 문장을 카피라고 정의하는 건 좁은 정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카피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글'이고 카피라이터는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마케팅적 글쓰기를 대신해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제일기획 공채로 카피라이터 일을 시작하고 SBS를 거쳐 지금은 ‘잘’이라는 크리에이티브 오피스를 운영하는 임윤정 카피라이터를 만나 그녀가 생각하는 '카피의 세계'를 들어보았다.

외부 활동을 통해 마케팅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접하고자 한다는 임윤정 카피라이터. (오른쪽)

■ 카피는 크리에이티브? 검토와 확인을 수반한 ‘노동’

그녀 역시 카피라이터가 되면 짧은 문장만 쓰면 되는 줄 알았다. 15초, 30초 분량의 카피만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짧은 분량의 카피를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씩 써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5분~7분 분량의 홍보영상, 하우투 영상, 상세페이지, 카달로그, 행사 대본, 제품이나 브랜드 스토리까지 분량도 형태도 다양한 카피 작업이 있다는 걸 실무 현장에서 알게 되었다.

카피를 쓸 때,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만족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카피가 마케팅 목적의 글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마음에 닿는 카피를 써야 한다는 생각도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광고주가 만족할 때 소비자에게 닿을 기회도 생긴다. 결국 1차 고객인 광고 클라이언트가 담고 싶었던 것이 잘 반영되었을 때 소비자에게 노출되고 의미가 생기는 것이 카피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카피 중의 하나가 최근 출시된 갤럭시S23 시리즈다.

"갤럭시S만의 톤앤매너가 있어서 그 무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반영해 익숙하지만 낯선, 그래서 새롭고 설레는, 사고 싶게 만드는 카피를 쓰고자 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보니 쉬운 단어들을 사용해, 막힘없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에 집중했다"

카피는 제품의 소구점을 잡아 클라이언트와 소비자의 마음을 매료시켜야 한다. 그러한 글을 작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OT라는 게 임 카피라이터의 생각이다.

"콘텐츠의 형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카피만 써달라는 업무의 경우 클라이언트가 카피라이터에게 OT를 주는 것으로 업무가 시작된다. 어떤 일이든 첫 단추를 잘 껴야 뒷일이 쉬워진다. 카피도 마찬가지다. OT 안에는 주제, 목적, 타깃, 분량 등이 담겨 있기 때문에 카피의 방향성을 잡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단계가 OT라고 본다"

임 카피는 기업의 제품 광고뿐만 아니라 공익 캠페인 카피 작업도 많이 했다. 공익 캠페인 카피 작업은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둘 다 클라이언트의 요구하는 방향대로 작업 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나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 쪽이냐에 따라서 마음의 비중이 달라지는 것 같다. 내가 자주 쓰는 제품이거나, 내가 관심 있는 분야면 공익이든 일반 기업이든 더 마음을 담은 카피를 쓰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LG전자 노트북 gram의 '나만의 시작, 나만의 그램' 시리즈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그 영상 콘텐츠를 보면, 자신이 만든 로봇이 작동을 멈추자 누군가 '실패?'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주인공 아이는 '성공하는 중!'이라고 답한다. 그 카피는 내가 실패라고 생각되는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되새기는 카피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성공하는 중이라고… 내가 썼지만 나에게 힘을 주는 카피라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는 카피, 그런 문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외부 강연 중인 임윤정 카피라이터

■ AI카피라이터의 출현, "시장과 사람에 대한 깊이 있어야 살아남을 것"

카피 자체가 마케팅의 요소다 보니 마케터나 MD 등 주 업무가 글 쓰는 일과 거리가 먼 직무자들이 카피 작업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임 카피라이터는 실무자들의 마케팅 관련 이해도가 오히려 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카피는 잔재주로 쓰는 게 아니라 마케팅적 이해로 쓰는 글이다. 약간의 카피라이팅 노하우만 겸비한다면, 직무자가 직접 카피를 쓸 때 더 좋은 카피를 쓸 확률도 높아진다"

또한 카피라이터에게는 이해력과 독해력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강조하지만 카피는 문학이 아닌 철저한 마케팅적 글쓰기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클라이언트의 상황과 시장, 소비자의 상황이 어떠한지 잘 이해해야 한다. 이해력은 기본적으로 ‘눈치’ 같은 센스에서 비롯되지만, 독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 도서를 많이 읽으면서 해석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챗GPT로 대표되는 초거대AI 서비스들이 출시되면서 글은 물론 그림까지 다양한 컴퓨터의 창작물이 나오고 있다. 카피도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에서는 이미 광고 카피를 AI가 작성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제품에 대한 데이터를 입력만 하면 이를 분석하고 마케팅 데이터를 엮어 카피라이팅 기법까지 적용할 수 있는 AI의 능력은 사람을 위협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시간과 인건비는 줄이고 성과는 사람의 창작물 못지않다면, 카피라이터라는 직군도 위협이 될 만하다. 이같이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시대에서 카피라이터의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이 요구될까.

임 카피라이터 역시 챗GPT의 정확도가 지금보다 월등히 좋아진다면, 그때는 AI가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될 것이란 각오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더 큰 앞단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과 제품,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력, 시대와 세대를 사로잡는 센스와 매력, 즉 창의력이 겸비될 때 좋은 콘텐츠,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기계적으로 작업하기보다 더 깊이 느끼고, 더 열심히 파고드는 카피라이터만 살아남을 것이다"

최근 챗GPT 관련한 강의를 들었다는 그녀는, 얼마 전에 산 시집의 제목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를 보고 안도감을 느꼈다며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그런 문장은 기계적으로 쓸 수 없는 문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시집을 보면서, 생각과 감성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카피가 분명히 있고, 그런 카피를 쓸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문화도 기술도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카피를 쓰기 위해, 그녀는 마케팅 현장의 목소리를 접하는 자리도 많이 늘릴 예정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한 번도 일이 끊긴 적이 없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비결을 찾자면 많은 강의 활동을 하면서 실무자와 현장의 고민을 직접 대하고, 넓은 분야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새로운 일과 분야에도 빠르게 시도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카피에 관해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지면서,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고 또 새로운 기회를 열어가고자 한다"

저작권자 ⓒ 디지털마케팅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